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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7 에디터 김영석 사진 이재윤
UNIVERSE: CIRCL8 DAN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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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New wine must be put into new bottles; and both are preserved.
-Luke 5:38-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는 것,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건 마음으로 먼저 그 길을 헤아려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둠에서 빛을 보듯, 혼돈에서 질서를 꿈꾸듯 창조주를 닮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하겠다. 마음으로 먼저 빛과 질서를 그려내지 못한다면 만들수도 없다. 그렇게 세상은 항상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달려오지 않았던가.
새로운 길을 찾는 분을 만났다.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을 내려고 하는 분이다. 창조의 고단함이 묻어나면서도, 아니 그래서 더 맑은 그의 눈빛이 인상적이더라. 모든 것이 어제와 같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이야기다. 천천히 바꾸려고 자꾸 미루기만 하던 인간을 혼내듯 지구가 스스로 멈춰서기를 선택한 상황이다. 다음 스텝을 생각하라는 건 아닐까.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문화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윤 목사의 이야기다. 소위 일반적인 목회자의 길을 가는 분은 아니다. 걸어온 길도 종교인이기보다는 음악가의 삶에 더 가깝다. 여전히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문화순례자>라고 소개하면 어떨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음원에 대하여
소개가 마음에 드는가? 음악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최근에 [CIRCL8 DANC8]라는 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공연장을 운영하고 목회자로서 살아가는 것도 나의 삶의 중요한 축이지만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정의는 음악을 좋아하고 만드는 사람이다.
어떤 음악을 하고 있나 <전자음악>이라고 하면 될까? 최근에 들어서야 창작자로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자아정체성이 회복되는 기분이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하는 작업이라 만족스럽진 않지만 내 옷을 입은 것 같은 안정감과 작은 희망 같은 것이 있더라.
왜 전자음악을 선택했나? 어릴적부터 밴드음악을 하며 자랐다. 음악은 함께 하는 작업이라고만 생각했다. 여러 사람이 시간을 맞추고 합주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미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라이브무대로 전자음악을 접했다. 새로운 세계로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밴드음악이 좋긴 하다. 무슨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그게 내 취향이다. 하지만 전자음악은 내가 구축했던 음악세계의 지평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부르는 초청과 같았다.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Rock 음악이 선형적이라고 한다면 Electronic 음악은 비선형적이다. 좀 더 쉬운 말로 설명해 보겠다. 락음악은 기승전결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서히 산을 오르듯 음악을 완성해 간다. 반대로 전자음악은 접근 자체가 다르다. 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 병렬적으로 분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이게 정말 새로운 부분이다. 전자음악은 루프라는 기본 단위의 반복을 병렬적으로 변주하는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열어주더라.
반복과 변주를 통해 음악적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정확한 표현이다. 몇몇 전자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는 없었지만 분명한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들린다. 물론 이렇게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청자와 연주자가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독교전통 중에 <렉시오디비나>라는 것이 있다. 성경을 마음의 귀로 듣고 스스로 뜻을 헤아리는 독서법이다. 곰곰히 메시지를 발견하는 방식이랄까.
본인의 곡에도 메시지를 담았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기 보다 메시지를 녹아내려 하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최근에 EP음반 5곡 정도가 나왔다. 곡 마다 녹이려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 개념을 소리로 표현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렉시오디비나>의 과정 같았다. 1번 곡이 창조에 관한 것이다. 창조의 순간을 빅뱅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한 점에서 무한한 에너지가 퍼져 나왔다는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게 무얼까? 어떤 일이 그 순간에 일어났을까?' 라는 고민을 소리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순간을, 또한 나의 고민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제작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현대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이전의 합주를 바탕으로 한 밴드음악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의 음악이 각 악기들의 밸런스와 조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현대의 전자음악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고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 락은 기승전결이 있지만 전자음악은 느낌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그림 그리듯이, 퍼즐을 맞추듯이 채우고 맞추어 가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강요하지 않고 자기만의 느낌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느끼는 사람이 중심이다. 그들에게 이것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전자음악이 종교음악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전자음악은 개인적 느낌을 표현하는 통로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공동체적 예배에 어울린다고 말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나의 생각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좀 불편하다. 전자음악과 예배를 아직까지는 연결짓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좀 이른감이 없지 않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자음악을 예배에 적용하려고 하는 노력이 때로는 현대적 적용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려는 강박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음원이야기로 돌아가자. 창조의 순간은 어떻게 담아냈나? 가장 원초적인 소리로 표현하려고 했다. 신디사이저는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전기적 파장을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형태로 바꾸는 기계다. 초기에는 전자부품과 기계들을 하나하나씩 전선으로 연결하여 소리를 만들었따. 그런 기계들을 모듈러 신스(Modular Synth)라고 한다. 그런 기계가 만든 음악들은 굉장히 원초적이다. 그런 음악을 만든 사람들은 사진으로만 본다면 음악가보다는 전기기술자에 가까워 보인다. 나에겐 그들이 만든 소리가 원초적으로 들리더라. 최첨단의 신디사이저가 만든 소리가 미슐랭 푸드라면 그들이 만든 소리는 신선한 도라지 한뿌리를 통째로 먹는 쉐프의 기분이랄까? 수많은 소리의 조합이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시그널이 만들어 내는 소리. 이것이 창조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시그널 제너레이터]라는 기계를 사용했다. 악기가 아니라 전파사에서 쓰는 가장 원초적인 신호재생기이다. 놉(Knob-돌려서 볼륨 등을 조절하는 부품)으로 제어하면서 소리를 분해하고, 또 그 소리를 나누고 조합해내는 일이 천지창조의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나이아의 옷장에 대해서
문화공연장 [나니아의 옷장]을 열게 된 이유는? 다른 뮤지션들에게 공연의 장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요즘에는 너무 흔해져 버린 이야기 같이 들린다. 그런데 벌써 새 길을 찾아 고민을 시작한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는 열린공간에 대한 꿈을 꿨다. <제 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사생활이 있는 사적공간, 아니면 생업을 이어가는 공적공간으로만 채워진 삶에 문화를 배경으로 함께 편하게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화려하고 잘하는 곳은 많으니 우리는 작지만 색깔있고 따뜻한 공간이 되기를 원했다.
어떤 형태로 시작했는가? 처음에는 책읽기 모임을 했다. 소그룹으로 만나 면대면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나이아의 옷장의 출발이다. 당시에 유행이던 소셜다이닝이 접목되면서 함께 만들고 나누는 모임으로 커져 갔다. 도시 속에서 직장인 5-8명이 퇴근길에 함께 밥 해먹고 수다떠는 공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유쾌하지 않은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자리. 그래서 더 많이 배우게 되는 자리가 되었다.
음악공연장을 열게 된 계기는? 늘 인디밴드들에 대한 마음이 있다. 내 자신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무대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자리를 열어주고 싶었다. [나니아의 옷장]이 있는 성북구에는 음악 공연장은 거의 없더라. 공연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닌가. 나의 최애 관심사는 관객보다 음악가였다. 최우선의 배려 대상은 음악인이다. 그들이 행복한 자리가 되기를 바랬다. 그들이 즐겁게 힘을 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기를 바랬다.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아내가 코스트코에서 재료를 사와서 직접 만들었다. 홍대에서 공연하던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저녁을 못 먹는 음악가들에게 샌드위치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지극 정성으로 만들었다. 그 때는 공연 관리자보다 샌드위치 장인이었다. 샌드위치, 이게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지금은 샌드위치를 만들지 않지만 그들을 위한 마음은 여전하다. 함께 먹고 함께 나누고 함께 공연하고 함께 기뻐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음반 소개
전자음악가 circl8 danc8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5곡의 EP음반, 여러 가지 관념을 소리로 나타내고, 또 그 소리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통해 사물의 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다. 옛날 사람들이 앎을 얻는 방식은 오늘과는 달랐다. 책이 없고 정보가 부족했기에 한 단어를 놓고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며 본질을 깨닫는 방식을 썼다. 서양에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의 전통이 있고 동양에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설명에 의해서 알기보다는 순간의 직관적 깨달음으로 ‘그냥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라든지, 어린 아이가 ‘이 사람이 나의 부모구나’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circl8 dacn8의 음악을 통해 그 순간을 체험해보자.
1.In the Big Beginning (from one source) : 한 처음에 (하나의 근원에서)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일까. 우주는 빅뱅이라는 한 순간, 무한소의 무한대 에너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계속 성장하고 분화하여 138억년 후 오늘의 우리가 되었다. 전자음악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모듈러 신스의 경우 5v내외의 순수한 전기신호로 시작하여 많은 필터와 기계장치를 거쳐 아름답고 정교한 전자음악이 된다. 이 곡의 모든 소리는 계측용으로 쓰이는 Signal Generator (신호발생기) 한 대에서 만들어 졌다. (샘플링 목소리제외) 수백 밀리볼트의 작고 순수한 전기신호를 믹서를 통해 여러 갈래로 분리하고 각각의 소리에 필터를 걸어 바람소리, 충돌소리, 3화음 등을 만들어 내었다. 샘플링 된 소리는 현재 인류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인 히브리어이다. 유대교 랍비가 구약성경 첫 문장 ‘태초에(한 처음에)’ (בְּרֵאשִׁ֖ית 베레쉬트)를 읽은 것인데, 3천년전 인류가 소유했던 문장이 오늘 여기에 특별한 영감으로 다가온다.
2.Gradual Ascending & Quantum Jump : 점진적 성장과 양자적 도약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시간이 흐르면 모든 건 성장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죽은 존재이다. 성장에는 점진적인 것도 있고 양자적으로 비약적 도약을 이루는 것도 있다. 우주는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전자악기 형태인 모듈러 신스의 순수한 소리로 표현해 보았다.
3.Not Only Electrical Signal But Glorious Soul : 단지 전기신호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영혼이다. 유물론적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은 전기신호의 집합에 불과하다. 두뇌에서 만들어진 수백 mV의 전기신호가 뉴런을 통해 오고가며, 그것을 통해 인간은 모든 생활을 영위해간다. 그렇게 보면 인간도 모듈러 신스 같은 하나의 전자악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전기시그널 이상의 그 무언가 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영혼이다. 음악적으로는 아날로그적 전기의 느낌이 듬뿍 담긴 베이스 소스에 힘을 실었다.
4.S.O.S Scattered around Noise : 소음 속에 흩뿌려진 구조신호 지구 차원에서 보자면 하루에도 수 많은 구조신호가 울려퍼진다. 우리는 우주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5.Chaos & Beauty : 혼돈과 아름다움 우주는 혼돈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이다. 우주는 서클댄스(윤무 輪舞-손을 잡고 둥그렇게 돌아가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춤의 방식)와 같다. 그것이 우주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인간도 그렇게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미니멀한 ep 다른 곡들과는 달리 화려한 신스의 음색을 살려보았다. 앞으로 circl8 danc8의 음악이 전개될 방향을 암시하기도 한다.
Credit
작곡, 모든 악기_circl8 danc8
mix & master_circl8 danc8
video_circl8 dan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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